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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文学の中心にあるもの

斎藤真理子「韓国文学の中心にあるもの」。

出版日に届き、一晩で読み切ってはや2ヶ月以上経つが、いまだ読後の余熱のなかにいる。これまで韓国文学はほとんど読まずにきたが、この本で紹介されている作品一つ一つを順に手にとっている。

1945年以降の韓国現代史に対峙する。いつか日本人の誰かが取り組むべき課題を、膨大な量の韓国の「詩心」と向き合ってこられた翻訳家、斎藤真理子さんの筆致で、韓国文学を通じて成されたことはとても幸運だったとおもう。

その卓越したガイドで、「広場」に立つ文学作品の主人公の視座から、韓国の70余年を時空を越えて旅することができる。

言論弾圧は、1910年から始まった日本の植民地支配が終焉した1945年以後も、東西冷戦下での朝鮮戦争の勃発、南北停戦下での軍事政権が終わる1987年まで、70有余年続いた。

その間、世界史の凶暴な奔流に翻弄され続けた人々は、国のあり方の意思決定に民主的な形では一切参画出来なかった。

だが、自由な言論が赦されなかった長い時間、吹き荒れる不条理の嵐の中、ロウソクの灯火を守るかのように「詩」は紡がれてきた。

届かぬ声を上げつづけ、命を削って、路上に立ち続けた世代の灯火のリレーの果てようやく、国家とイデオロギーの頸木から民主的に解放される。


しかし、経済発展の途上に襲ったIMF経済危機。その閉塞感からもようやく抜け脱したとおもわれた矢先、「セウォル号の沈没」という悲劇が発生する。沈みゆく巨大な船体をテレビ中継で多くの国民が共有した。その憤怒は、やがて大統領を退陣に追い込む。

しかし、同時に政権に対して異を唱えた個人へのこころない攻撃は、苛烈を極めた。

それは、社会から振り落とされぬよう国家や民族という幻想の共同体にすがりつくしかない孤独なネット難民と、彼らを利用することでしか存在価値を示せない日本の右派政治家の姿と重なって映る。

世界は、容易に色分けできない。現実はあまりに繊細だ。ジェンダーギャップは半島も列島もいまだ世界から褒められるレベルではない。

真実は、目に見えない吐息のなかにある。あるいは、まだ響きをもたない胚芽として胸の奥深くに沈んでいる。言語化不可能な不条理な日々は、「詩」でしか掬い取れない。

韓国文学というプリズムに光を照射したとき、そこに浮かび上がってくるのは、百人百様の固有の色彩。

生き抜くために避けられない「広場」と「密室」のせめぎ合いの中、静かにコトバの水面に浮かび上がるのは、「私」という一艘の小舟。

次々と襲う巨大な時代の渦に飲み込まれながらも、櫓を漕ぎ、一艘の小舟を操船することで鍛えられた「韓国文学」。そのしなやかな「私」の強靱さは、いつの間にか「人類の普遍的叡智」という深い地下水脈に接続し、21世紀に文学としてのみならず、音楽、映画、演劇などのアートの世界で花開き、脚光を浴びることになった。

一方、わたしたちは、敗戦国であった。しかし、戦勝国から与えられた棚ぼたの「民主主義」を、さも自ら引き寄せたかのように振る舞い、その「自由」にさえ温かい息吹を加え続ける努力を怠り、あげくに隣人には背を向けつづけた。その潜在的な「後ろめたさという闇」は、結局、カルト教団の巨額の集金装置や、両国の民族主義者たちの幼稚な政治的文脈に利用されただけだった。

隣人は、いつしか私たちよりずっと「大人」になっていた。

夜、ひとり、静かにページをひらくと、やがて、背中越しの視線を感じる。3.11福島原発事故以降、デモは繰り返されたが、やがて報道されなくなった。言葉の自由度が狭まるのに連動するように経済も急激に失速している私たちの今の姿。

「共に学びましょう。語っておきたい物語が山ほどあるのです。」と背中越しにしずかな声が聞こえる。

振り返ると斎藤真理子さんによって、開け放たれたドアの向こうに豊かな色彩を放つ言葉たちが光を放ちながら佇んでいる。

小舟は、手を取りあい、いつか共に穏やかな大海にたどりつける。

私はそう信じ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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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토 마리코 '한국문학의 중심에 있는 것'.

출판일에 도착해 하룻밤에 다 읽은 지 벌써 두 달이 넘었지만, 아직도 독후감 여운이 가시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 문학은 거의 읽지 않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작품 하나하나를 차례로 손에 들고 있다.

1945년 이후의 한국 현대사와 마주한다. 언젠가 일본인의 누군가가 해결해야 할 과제를 방대한 양의 한국 '시심'과 마주해 온 번역가 사이토 마리코 씨의 필치로 한국문학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은 매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 탁월한 안내로 '광장'에 서 있는 문학작품 주인공의 시선으로 한국의 70여 년을 시공간을 초월해 여행할 수 있다.

언론 탄압은 1910년부터 시작된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종식된 1945년 이후에도 동서 냉전 하의 한국전쟁 발발, 남북 정전 하의 군사정권이 끝나는 1987년까지 70여 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 동안 세계사의 격랑에 휘둘려온 국민들은 국가의 존립을 위한 의사결정에 민주적인 형태로 전혀 참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언론의 자유가 용서받지 못한 긴 시간, 부조리의 폭풍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시'는 촛불의 등불을 지키듯 엮어져 왔다.

닿지 않는 목소리를 내고, 목숨을 걸고, 길거리에 서 있던 세대의 등불 릴레이 끝에 마침내 국가와 이데올로기의 목줄에서 민주적으로 해방된다.


그러나 경제 발전의 도중에 닥친 IMF 경제위기. 그 막막함에서 겨우 벗어났다고 생각한 순간 '세월호의 침몰'이라는 비극이 발생한다. 가라앉는 거대한 선체를 TV 중계를 통해 많은 국민들이 공유했다. 그 분노는 결국 대통령을 퇴진으로 몰고 간다.

그러나 동시에 정권에 반기를 든 개인에 대한 무분별한 공격은 극에 달했다.

그것은 사회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국가와 민족이라는 환상의 공동체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고독한 인터넷 난민과 그들을 이용해야만 존재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일본 우파 정치인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세상은 쉽게 색깔을 구분할 수 없다. 현실은 너무 섬세하다. 젠더 격차는 반도도 열도도 아직 세계가 칭찬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진실은 보이지 않는 숨결 속에 있다. 혹은 아직 울림이 없는 배아로 가슴 깊숙이 가라앉아 있다. 언어화할 수 없는 부조리한 날들은 '시'로만 건져낼 수 있다.

한국문학이라는 프리즘에 빛을 비추었을 때, 그곳에 떠오르는 것은 백인백색의 고유한 색채다.

살아남기 위해 피할 수 없는 '광장'과 '밀실'의 다툼 속에서 조용히 말의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은 '나'라는 한 척의 작은 배다.

연이어 닥쳐오는 거대한 시대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면서도 노를 젓고 한 척의 작은 배를 조종하며 단련된 '한국문학'. 그 유연한 '나'의 강인함은 어느새 '인류의 보편적 지혜'라는 깊은 지하수맥과 연결되어 21세기에 문학뿐만 아니라 음악, 영화, 연극 등 예술세계에서 꽃을 피우며 각광을 받게 되었다.

반면 우리는 패전국이었다. 그러나 승전국이 준 '민주주의'를 마치 스스로 끌어들인 것처럼 행동했고, 그 '자유'에조차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는 노력을 게을리했으며, 결국 이웃을 계속 외면했다. 그 잠재적 '죄책감이라는 어둠'은 결국 컬트교단의 거액 수금 장치와 양국의 민족주의자들의 유치한 정치적 맥락에 이용될 뿐이었다.

이웃은 어느새 우리보다 훨씬 '어른'이 되어 있었다.

밤에 혼자 조용히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느새 등 너머의 시선이 느껴진다.3.11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시위는 반복됐지만, 결국 보도되지 않게 됐다. 언어의 자유가 좁아지는 것과 연동되어 경제도 급격하게 침체되고 있는 우리의 지금 모습.

"함께 배우자. 함께 배우자."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이야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요." 등 뒤에서 잔잔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뒤돌아보니 사이토 마리코 씨가 열어놓은 문 너머로 풍부한 색채를 발산하는 말들이 빛을 발하며 서 있다.

작은 배는 서로 손을 잡고 언젠가 함께 잔잔한 바다에 닿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DeepLで翻訳しました (https://www.deepl.com/app/?utm_source=ios&utm_medium=app&utm_campaign=share-translation